장흥
장흥 비파네 출산 후기,선생님 고맙습니다.

아빠가 고마워
-바다를 만날 수 있게 해줘서
아빠가 고마워
-바다를 만날 수 있게 해줘서-
새벽 4시 페달에게 진통이 왔다. 첫째 딸 비파를 낳을 때는 무려 56시간이 걸렸던지라, 둘째 역시 진통의 기간이 길거라 예상했다. 아내인 페달(아내의 별칭)은 비몽사몽인 나를 향해 “진통이 왔어.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조금 더 자둬.” 라며 말을 전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페달 혼자만의 온전한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좀 더 잠을 잤다. 새벽 6시, 거실로 나와 보니 페달은 조용히 앉아 히프노버딩 음악에 맞춰 숨을 고르고 파도(수축 진통)가 오고감에 따라 몸을 흔들고 있었다. 첫째아이에 이어서 둘째를 낳을 때도 역시나 우리가 상상하는 출산의 기본적인 방식은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속도에 맞게, 원하는 것을 하며” 였다. 그래서 우리는 진통이 시작되자 춤을 췄다. 격렬한 춤은 아니지만 새벽녘 어스름한 불 빛 아래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며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평화로운 춤이었다. 다행히도 페달은 침착했고,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
첫째 비파를 낳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으로 미지의 영역인 창조의 신세계에 들어서는 순진한 예비 부모였던 우리들은 오직 자신감만으로 무장되었다. 책으로 몇 달을 공부했고, 충분히 연습했으며, 무엇보다도 여성의 의식 안에는 자연스럽게 출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니 출산의 기다림은 행복이었고 설렘이었다. 어떤 한 친구는 우주와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고까지 했다. 정월 대보름달이 뜨던 날, 이웃들과 맛있는 대보름 밥상을 차려 먹고 집으로 돌아온 새벽, 첫째를 맞이하는 진통이 마침내 시작되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무척이나 해맑았다. 처음에는 책을 한켠에 펼쳐놓고 페달과 책을 번갈아가며 보느라, 진통 주기를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겉으로는 태연하고 평온한 척 했지만. 그러다가 진통이 밤낮으로 이어져 마침내 3일째가 되면서 우리는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듬을 잃고 주위의 걱정과 충고에 휘둘려서 병원을 2차례나 왔다 갔다 했고 의사와의 지난한 설득과 협박, 그리고 부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약간의(?) 언쟁 끝에 결국 우리는 병원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편안하지 않는 환경에서 아이를 맞이할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으로 갈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던 그 순간, 나는 페달의 눈을 쳐다봤다. 아내는 진통 속에서도 결연하게 아이를 집에서 낳기를 바랐다. 그 눈을 통해서 마음을 확인한 순간, 나는 지금 우리의 선택이 결코 후회 하지 않을 결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확신이 들었다. 걱정하는 간호사들의 시선이 등 뒤에 쏟아졌던 기억이 난다. 병원에서는 20분 안에 아이가 나올 것이라고 했고 집까지는 30분을 가야 했기에 호기롭게 병원을 나가자고는 했지만 정말이지 긴박한 때였다. 친구에게 운전대를 넘겨주고 뒷 자석에 앉아서 아내를 조금씩 진정시켰다. 집으로 돌아와 집 앞의 밭을 걸으며 새벽의 휘파람 새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 마음이 이상하게도 평온하고 행복해졌다. 그런 마음으로 방안에 들어와 두 어번 힘을 주니 아이 머리가 보이고 쭈그려 앉아있던 페달을 일으켜 세우니 마침내 첫째 딸 비파가 세상에 나왔었다. 내 손으로 떨어지는 뜨거운 생명. 눈 위에서 떨어지는 뜨거운 눈물. 아빠와 엄마가 되기 위해 고생한 마음을 비파는 아는지 모르는지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하품을 몇 번 했다. 3일간의 사투를 경험한 끝에 우리는 마침내 세 식구 모두가 따뜻한 구들방에서 평온한 낮잠을 잤다.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첫째가 조산사 선생님의 도움없이 오로지 둘이서만 아이를 낳기로 결심해서 낳았다면, 이번 둘째는 조산원에서 조산사 선생님을 모시기로 했다. 보통은 첫째를 선생님이 받아주고 둘째는 엄마 아빠가 둘이서만 낳는다고 하셨다. 우리는 주체할 수 없는 자신감과 확신으로 첫째를 산파선생님 없이 낳았지만, 분수를 모르는 자신감은 반드시 고생을 부르는 법이다. 첫아이를 낳기 위해서 그 3일을 고생을 했으니 이번에는 아내가 산파 선생님을 찾아보자고 한 것이다. 산파 선생님이 계시면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르고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어 더 편안한 출산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산모의 출산 상태에 맞춰서 적절한 대처를 잘 해주실 것이었다. 그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출산 당일 새벽, 진통이 시작된 이후 5시간 만에 갑자기 진통 간격이 점점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새벽에 진통이 올 때까지만 해도 느긋하게 진행될 것 같았지만 아침에는 상황이 급속도로 달라졌다. 조산사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고 바로 출발하시기로 하셨다. 그때는 이미 8시. 그런데 진통 간격은 2분에서 3분. 시간상 지금 출발을 하셔도 12시에 오시니 진행되는 속도로는 아이가 그 전에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3시간을 넘게 보내고 마침내 11시 40분이 되었는데 양수가 터졌다. 우선은 긴장하지 않았다. 일전에 양수가 터지고도 2일을 보낸 사람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고, 출산 관련 책에서 그런 부분이 나와 있었다고 페달을 안심시켰다. 속으로는 둘이서 온전히 산고의 파도를 타고 있었으니 결국 이번에도 첫 아이 때처럼 내 손으로 아이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달을 눕히려고 하면서 아이가 나올 수 있으니 내가 받겠다고 했다. 그 순간! 때마침 산파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다. 대구에서 장흥까지 콜택시를 타고 오셔서 예상보다 일찍 마을에 도착하셨다고 하셨다. 마을에 도착을 하고 말씀드린 숲길(집이 산 안쪽에 있다)을 따라 집으로 오시겠다고 하시고 전화를 끊었는데, 오시는 길에 몇 차례나 산모의 상태를 확인하시려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뛰어 들어오시고 페달을 눕히고 진찰을 했다. 아이는 지금 바로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선생님이 마치 편안한 우리 외할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친구들에게 부탁한 첫째 딸 비파를 다시 데려와 달라고 전화를 했다. 비파와 둘째를 함께 맞이하고 싶었다. 비파가 마침 집으로 왔고 페달이 힘을 주자 머리가 나왔다. 또 다시 힘을 주자 드디어 온전히 둘째 아들 보배가 세상에 나왔다. 아침에 시작하고 점심에 나오다니. 이런 드라마 같은 상황이 있나. 보배가 나오니 이제야 새가 ‘휘익~휘익~’하고 우는 게 들린다. 그 새소리에 나도 긴장을 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웃고 있었다. 비파 때 들었던 새소리와는 다르다. 점심에 우는 새는 확실히 새벽에 우는 새보다 여유 있고 평화롭게 운다. 이렇게 또 우리는 부모가 되었다.
둘째의 태명인 보배는 ‘보고 배울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보배. 바다의 보물 같은 배. 첫 아이 이름은 비파. 신비로운 파도. 우리는 그날부터 첫째 딸 비파와 둘째 아들 보배로 인해 행복한 평화의 바다를 향해 간다. 마음이 저절로 고마움에 두둥실 떠올라 한없이 행복해진다. 그러니 이제 막 태어난 보배에게 말해보았다. “보배야 고마워, 아빠에게 바다를 만나게 해줘서.”
둘째아이를 조산원에서 상담을 하고 출산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가정출산을 꿈꾸었다가 병원까지 가서 실랑이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힘겹게 낳았던 첫아이의 경험. 그리고 조산사 선생님과 함께 했던 둘째 아이의 출산을 경험해보니 조산사 선생님이 계시니 너무나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다. 편안한 분위기, 편안한 사람들, 마치 외할머니가 손주를 받아주시듯 너무나 편안하게 받아주셨던 선생님. 그 뒤로도 아내가 젖몸살로 힘들 때 연락을 주셔서 여러 조언을 해주셨다. 선생님께서도 보배를 받았을 때의 경험이 너무 좋았다고 해주시면서, 가지고 계신 아이 배냇옷까지 소포로 보내주셨다. 보내주신 옷에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누구라도 가정출산을 고민하고 있다면 조산사 선생님께 도움을 받아서 편안한 출산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날의 웃음들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때 편안하게 도움주신 선생님께 다시 한번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대구 온누리 조산원
010-4461-9961